올드카세트

Goodbye, Mariss Jansons

Gigi_지지 2019. 12. 7. 06:13

 

클래식 음악에는 딱히 큰 관심도 없고 열정을 바칠 생각도 없지만 몇해 전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베를린필의 디지털콘서트홀을 구독했던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만 보고 구독을 해지하기는 아까워서 이것저것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 된 지휘자가 마리스 얀손스였다. 

 

베를린필에 새 상임지휘자가 공식적으로 취임하기 직전(물론 그분도 지금은 상임지휘자에서 퇴임하여 다른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셨지만)인 2002년, 얀손스는 베를린필의 '한해 결산 앙코르 연주'나 다름없는 발트뷔네를 지휘했다. 테마는 '세계의 앙코르'로서 콘서트를 마치고 앙코르로 연주될 만한 짧고 듣기 부담없는 곡들을 고른 콘서트였다. 나 같은 문외한이 들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클릭해본 콘서트였는데, 첫번째로는 김연준의 '비가'와 NHK교향악단 지휘자였던 도야마 겐조의 '유겐' 같은 곡을 선곡한 감각에 놀랐고(처음에는 한일월드컵이 있던 해라서 양국을 배려하는 취지인 줄 알았다...), 두번째로는 아, 지휘가 음악을 드러낸다는 게 바로 저런 거겠구나 싶은 우아함에 감탄했다(여담이지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발트뷔네만 화질이 좋지 않아 안타깝다. 물론 음질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화질이 좋은 소스로 교체해줬으면 좋겠다).

 

대중음악 포함 모든 연주자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인데, 아무래도 신체감각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게 예술이다 보니 나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면 잘 듣거나 보지 않게 된다. 그 위화감을 뛰어넘어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일은 많지 않다. 때문에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번에 베를린필의 상임으로 취임하신 그분이나 한국에서는 거의 아이돌의 위상에 근접하는 피아니스트 ㅈㅅㅈ도 음악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역시 위화감이 들어 잘 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얀손스는 제법 많은 연주를 유튜브에서도 찾아보고 했지만 한번도 그런 위화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사이먼 래틀의 친근한 이미지와 유쾌함도 음악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며 좋아하는 지휘자이지만 같은 곡의 연주를 놓고 선택하라면 역시 얀손스를 택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클래식 음악에 바라는 유려함, 웅대함, 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지휘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보게 만들 수 있는 멋진 퍼포먼스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재작년이었던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온다는 소식에 예매까지 해두었지만 건강 문제로 결국 그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영영 그런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그런 지휘 퍼포먼스를 보여줄 지휘자는 이제 없는게 아닐까 싶어 무척 아쉽고 슬프다. 다시 한 번 마에스트로의 명복을 빈다. 안녕히 가세요, 얀손스.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