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카세트

Ryuichi Sakamoto_Bibo No Aozora(1995)

Gigi_지지 2020. 7. 3. 20:41

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팬이었던 적은 없지만 이 곡만큼은 무척 좋아한다. 내 생각에 <1996>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그의 앨범이 아닐까 싶은데 그 앨범에도 다른 편곡으로 이 곡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곡이 실린 <Smoochy>는 1996 바로 앞에 발매한 앨범이다. 

 

사실 어떤 경로로 Smoochy를 듣게 되었는지는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곡이 1996에 실린 Bibo No Aozora의 원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영화 <바벨>에도 다른 버전으로 이 곡이 나온다) 류이치 사카모토 본인의 저음 보컬이 매력적이고 과연 어떤 가사인지 너무 궁금해서 앨범을 구해보려고 기를 쓴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외국 곡도 가사를 번역해서 넣는 경우가 많은 일본 음반계의 특성상(?) 앨범에는 틀림없이 가사가 들어 있으리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앨범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겨우 구했으나 가사가 없었다! 

 

그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웬만한 노래는 다 가사를 찾아볼 수 있는 시절이 도래했다. 그리하여 이 곡의 가사도 찾기는 하였으나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웬만큼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지금에 와서도 난해하다는 인상이 먼저다. 'Bibo No Aozora'라는 영어로 표기된 원 제목부터 그랬다. 이 곡은 Bibo No Aozora이지, 절대로 '美貌の青空'가 아니었다. 그런데 '미모의 푸른 하늘'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제목부터 시작해서 가사 자체가 전부 무척 아름답고 시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옮겨보려고 하면 짧은 일본어와 한국어에 한탄만 하게 된다. 여러 번 한국어로 옮겨보려고 시도했으나 지금까지도 마음에 드는 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아픔(?)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 곡은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의 뿌리가 테크노라는 걸 잘 알게 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그의 출발점은 YMO라는 테크노 그룹이었고 여기서 출발한 음악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앨범이 Smoochy이다. 이 앨범에는 일렉트릭 악기에서 종종 뉴에이지 계열로 간주되는 어쿠스틱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상당히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끝내고 내놓은 음반이 1996이었던 듯하다. 그뒤 그의 음악 여정은 1996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곡은 그의 음악적 뿌리인 테크노와 재즈적 피아노 터치, 멋진 보컬이 잘 어우러진 (내가 듣기로는) 상당히 희귀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단순한 리듬과 코드를 가지고도 잊어버리기 힘든 멋진 곡을 만드는 대단한 음악가임을 알게 해준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Rain이 얼마나 단순한 리듬과 코드로 이루어졌는지 영화 <마지막 황제>가 개봉한 지 수십 년이 지나서야 깨닫고 무척 놀랐다. 이 곡도 그렇다. 기본 리듬이 '쿵쿵따'라니. 정말 믿기 힘들다. 이렇게 테크노의 테크닉과 어쿠스틱을 결합한 곡들을 더 만들어줬으면 좋았겠지만, 이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런 곡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끝으로 실패한 단편이지만 어쨌거나 가사의 부분을 올려본다..

 

"슬픔으로 가슴을 상처입히며

너의 가련한 숨통에서

넘쳐 흘러나온 무지개의 절벽은

미모의 푸른 하늘

 

미친 여름이었지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조각 난 죽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