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채운
20대 대통령이 취임했으니 국가적으로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날일수록 국가적으로(?) 언론이 얼마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무지개가 떴다며 어떻게든 이날을 축복하고 상서롭게 보고 싶어하는 언론들의 갸륵한 마음은 잘 알겠으나 그건 무지개가 아니다.
무지개가 떴다고 하다가 무지개구름이라며 말을 요리조리 바꾼 기사의 한 사례(한숨).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961916
두산백과를 빌려 무지개의 정의를 보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95114&cid=40942&categoryId=32299
이 페이지에 실린 무지개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무지개다. 장마철이나 소나기 등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난 뒤에 보이는 일곱색깔 아치형 모양의 띠를 무지개라고 부른다. 어제 떴다는 그것은 이와는 다른 '채운', 즉 무지갯빛을 띠었지만 무지개가 아니라 아름다운 구름이다.
다시 두산백과를 빌려서 채운을 살펴보겠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5928&cid=40942&categoryId=32299
인터넷 등에서 채운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무지개가 선명한 아치형/반원형을 그리는 것과 달리 상당히 모양이 불규칙하다. 그리고 비가 쏟아진 다음에 뜨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언론이 무지개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그것은 무지갯빛을 띠는 구름, 그러니까 채운이다.
어쨌거나 위 페이지에 나오는 것처럼 "채운은 아름답기 때문에 서운(瑞雲) ·경운(景雲) ·자운(紫雲)이라고도 하며, 큰 경사가 있을 징조"라고 하니 국가적으로 큰 행사가 있는 날에 채운이 나타난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채운과 무지개도 구별하지 않고 어쨌거나 좋은 날에 좋은 걸 갖다붙이고 보자는 식의 언론의 태도가 과연 '길조'인지는 모르겠다. 무지개고 채운이고 간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요즘의 풍조에서 이 나라 언론들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취임식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의 정의를 소홀히 하는 언론들의 태도는 정권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듯한 느낌이 들어 씁쓸하다.
그러나 말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건 언론뿐만이 아니다. 지난 정권 말기에 나한테 가장 인상깊었던 기사는 이거였으니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53/0000031290
나라가 어쩌다가 궤변론자들을 엘리트랍시고 키워놨는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앞으로 5년간은 이런 사람들을 좀 덜 보기를 소망한다. 말의 중요성과 가치를 잘 알고 늘 실천하려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가 어느 당이든 나는 그를 지지하고 표를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