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의 매력
진보집권플랜 -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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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의 매력은 세 가지에서 나온다고 본다. 첫째는 그가 내세우는 가치다. 왜,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 하는지, 그 정치철학에 사람들이 끌려야 한다. 둘째는 그의 인간 됨됨이다. 살아온 길은 물론, 품성에 이르기까지 저 사람이라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셋째는 권력의지다. 세상을 크게 한번 바꿔보겠다,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내가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자들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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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보의 가치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수라고 여기는 이들이 '저 사람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 믿을 만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죠. 이런 일을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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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정보를 기초로 움직이면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물정도 모르면서 비판만 한다고 섭섭해했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이 개혁을 포기했다, 바깥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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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언제나 유능한 정부를 원합니다. 보수든 진보든 관계없이 말입니다. 유능, 무능에 대한 판단은 자신의 욕구, 희망, 불만, 고통 등을 얼마나 잘 처리해주는가에서 나오죠. 정치 '소비자'로서 시민은 이러한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를 싫어할 수밖에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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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386세대의 정치적 대리인 또는 '젊은 피'로 민주당에 '수혈'되어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기성 정치의 논리와 문화를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운동권의 조직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민주당의 조직 문화에 순응해버린 게 아니었을까 추측하는데, 별도의 진보파 정치 블록을 만들지도 못했어요.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중도' 운운하며 '우 클릭'하거나 당권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중이 직면한 고통을 직시하고 사회, 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시장권력'에 투항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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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대기업 우선, 수도권 우선, 4대강 지지 정책, 대북강경노선 등을 고수하고 있죠. 과거 그가 진보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의 지도자였다는 점이 믿기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철두철미 '서민풍'을 유지하고 있어요. 골프도 전혀 치지 않고 2008년부터 주말마다 택시를 운전하며 도민들의 의견을 청취했어요. 18차례에 걸쳐 26개 시군에서 약 3000킬로미터를 운전했다고 하더군요. 그의 동지이자 멘토인 이재오도 보세요.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얼마나 몸을 낮춥니까. 이 점만큼은 진보, 개혁 진영의 정치인, 활동가들이 배워야 합니다.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대중의 말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대중과 찰싹 밀착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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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는 '냉전'을 넘어 '열전'의 기운이 가득하다. 이 속에서 과거 자신의 말과 기준을 180도 바꾸면서 권력 유지, 행사에 '올인'하는 '후흑한'(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완장'을 차고 설친다.
민주주의를 '다수결주의'로 환치시키고 반대파와 비판자를 '법치'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말한다. "지난 선거에서 다수가 우릴 뽑았잖아. 우린 임기 동안 우리 편끼리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다음 선거에서 이겨서 너희 마음대로 하면 될 거 아냐. 물론 너희가 이기게 놔두진 않을 거지만......"
_조국/오연호, <진보 집권 플랜>에서
* 어떤 책은 시간이 많이 흘러야만 '검증'이 명확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전 민정수석이시며 서울대 법학과에 재직 중인 조국 교수에 대해 '잘생기고 말잘하고 SNS에도 적극적인 서울대 법학과 교수 진보 지식인' 이상의 이미지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어떤 정치인에도 이 이상의 관심은 사실 없다...).
기본적으로 이 <진보 집권 플랜>이라는 책은 현 정부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조국 교수의 과거 진보정치의 공과에 대한 반성과 정치적 비전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 또는 추진하려는 바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가 과거 10년 전에 이야기했던 재벌(노동/경제)정책, 교육정책, 검찰개혁, 북한과 통일 문제 등을 이 책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와 현 정부의 정책과 방향을 비교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상당히 일치한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로남불 끝판왕 위치에 거의 근접하고 계신 조 교수의 '말과 기준'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안타깝게도 과거와 현재가 상당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본다).
300여 쪽의 이 책에서 불과 몇 개 뽑지도 않은 인용문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진보 정치인, 활동가에게 바라는 바'는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거의 상식적인 수준이다.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말자, 얼굴이 두꺼워서는 안 된다, 과거 자신의 말과 기준을 바꾸지 말자, 인간 됨됨이 등등.
무엇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저 사람이라면 함께하고 싶다'의 기준에서 이분이 상당히 멀리 가버렸다는 사실이다. 지금 집안의 사학재단 문제에서 비롯하는 하도급 공사와 이로 인한 가족 간의 소송 문제, 위장 이혼 의혹, 전 재산보다 많은 사모펀드 투자 약정 문제, 정치적으로는 외고를 없애는 게 맞지만 내 자식 문제에서는 쭈구리가 될 수밖에 없는 특목고 문제, 친일파 갈라치기와 매도 문제 등등. 이런 의혹과 문제들을 보면서 '조국과 함께하고 싶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분이 어떤 '책'을 교묘히 이용했다는 점에서도 무척 실망했다. 일본인이 자기네 정치의 문제에 관해 쓴 논픽션을 가져와서 '이 책을 봐라. 이 책이 내가 말하려는 바와 주장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버젓이 카메라 앞에 노출시킨 태도가 솔직히 너무 이상했다. 학자라면, 연구자라면 그 책 한 권을 카메라 앞에 들이밀 것이 아니라 그 책의 전후좌우를 살펴서 논문을 쓰거나 책을 써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그 행동은 카메라가 들어오고 돌아간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정부 고위 관계자가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말을 어떤 책을 빌려 대변하게 하는 '간지'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 장면이 수도 없이 TV에 나오던 그날 아, 이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겠구나, 책과 미디어와 자신의 위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쓰던 당시에는 자신의 말과 행동 때문에 자기 자신이 정부의 최대 걸림돌 같은 존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단점은 비판해야겠지만 그 사람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끌어내려 패대기쳐서는" 안 된다고 나도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역시 이 책에 나오는 대로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다. 지금 조국 교수의 모습은 "대중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에 더 가까워져 있다.
보수는 유능하지만 부패했고 진보는 무능하지만 깨끗(청렴)하다는 프레임이 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서서 이 프레임은 다른 쪽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진보는 무능한데도 자기 잇속은 약삭빠르게도 잘 챙긴다. 솔직히 이분이 정부의 걸림돌이 되든 치워지든 내가 알 바가 아니고 그가 저런 정치인을 부른 용어대로 "모리배"라고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 이 사람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