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선생님에 대한 욕설 녹취가 공개되면서 언제나 그랬듯 며칠이나 갈지 모를 파문이 일고 있다. 기사를 보거나 읽은 많은 이들이 국가에서 전담으로 관리하는 외상센터를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언뜻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내 생각에는 그게 해법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의 외상센터 현실도 '국가'가 크게 개입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모두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쪽은 아니지만. 설사 그런 센터 건립 계획이 생기고 추진된다고 해도 지원할 의사가 거의 없지 않나 싶다. 빅5로 대표되는 병원들이나 대학병원들이 대체로 한국의 의료계를 이끌어간다고 볼 때, 자신들이 의학 공부를 한 대학과 그와 연계된 병원의 체제를 벗어난 병원으로 지원할 의사는 아마 매우 드물 것이다. 급여나 근무시간 등의 환경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가깝고 상대적으로 쉬운 길이 있는 이상 지금 당장은 의사 수급 문제를 개선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외상 환자 문제에 가장 관심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던 정치인들은 현재의 여당 쪽이었고 오래전 외상외과를 포기하려 했던 선생님을 설득한 것도 여당 쪽 분이었다(지금은 아마 심평원에 가 계신 걸로 안다). 그 외에도 부모님 상중에도 문상 온 선생님과 의료진 앞에서 상중인 것도 잊고 외상센터 이야기만 한 보건복지부의 공무원 분도 계셨고(그분 역시 지금은 외상센터와는 큰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일하신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로서 공무원이 되어 응급의료 현실을 바꿔보려 애쓰고 애쓰다 너무나 어이없게 응급의료센터 안에서 아무도 임종을 못 지키고 돌아가신 윤한덕 선생님도 계셨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움직이고, 체계를 바꾸고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온 게 겨우 여기다. 욕설 녹취가 공개될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 말이다.
이국종 선생님이 외상외과를 맡으신 지 대략 20여 년이고, 외상외과에 대해 최초로 전문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은 <중증외상, 누가 살릴 것인가>라는 KBS의 다큐가 공개된 지는 10여 년이다. 당신은 정말 열심히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하고 또 하셨다. 이 사회에서 선생님의 노고를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하지만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여기서 비행기 타고 몇 시간만 가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대로, 원칙대로 움직이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러면 좀더 뭔가를 할 수 있을 텐데. 나 자신의 부족함은 일단 차치하고 그렇다면 잘 맞아들어가는 부속품 하나가 되어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아 정말로 힘들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세계 각지의 일들을 실시간으로 듣고 보고 읽게 되자, 눈앞의 현실은 그저 벽일 뿐이었다. 왜 여기는 안 되나, 왜 우리는 안 되나, 왜 나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나. 하는 데까지, 그래도 하는 데까지란 과연 어디인가. 탈출구란 무엇인가. 온종일 그 생각만 하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잘해오셨다. 하실 만큼 하셨다. 선생님이 바라시는 대로 환자를 보고 치료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빌지만 그 이상으로 앞으로 선생님이 어떤 행보를 보이든 절대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닥터헬리를 띄우기 위해 만들어진 닥터헬리 조사검토위원회의 좌장이었던 고하마 아키쓰구 박사는 시발점을 1980년대 초로 기억한다. 경찰 고위 관계자가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러 왔던 게 출발이었다는 것이다. 환자의 이송에 헬기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도서산간 지역의 진정서, 의사들의 연구회, 구급활동에 대해 정부용역을 포함한 연구도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그들 역시 20여 년이나 걸렸다. 고하마 아키쓰구 박사로 추정되는 인물은 1999년의 닥터헬리 조사검토위원회 회의에서 읽는 사람이 그 분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열을 내며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회의에 많이 참여해봤다, 당신들은 정말 닥터헬리를 띄울 생각이 있느냐, 왜 안 된다는 이야기부터 먼저 하느냐, 미국도 영국도 브라질도 다 되는데 왜 일본은 안 되느냐, 결국 고속도로에는 착륙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이 회의는 띄우기 위한 회의다, 반드시 띄우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개선해서 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킬 생각은 않고 그저 현재의 규칙과 관행대로만 일이 돌아가서 '아무 탈 없기를' 바라는 관료들의 행태를 비난하는 그분의 심정이 절절히 전해졌다. 아마 그분의 분노는 대략 20여 년짜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번에 기발한 방법으로 탈출한 카를로스 곤이 말했듯이 일단 그들은 한번 뭔가를 하기가 힘들지(일본의 관료 사회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사실상 거대한 공룡 같아서 머리에서 뭔가 신호를 보내면 꼬리까지 도달해서 방향을 틀게 하기가 어마어마하게 어렵다. 물론 그렇지 않은, 티라노사우르스처럼 날렵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은 그 시절의 힘과 역량으로 오늘날까지 버티고 있다고 본다) 하고 나면 그럭저럭 잘 정착되고 제도가 아주 낡아빠지지 않는 이상 폐기되는 일도 잘 없는 사회다. 문제는... 하기도 힘들고 정착도 안 되는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짧은 소견이지만 이 나라는 근대적인 제도와 세부적인 부산물들을 온전히 자력으로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회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일차 진료기관 이차 진료기관 삼차 진료기관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안타깝게도 그건 가져온 것이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다르지만 일차 진료기관의 소견서가 있어야만 상급 진료기관으로 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규칙 역시 자력으로 만든 게 아니다. 의학이라는 말도 의사라는 말도 과학이라는 말도 한국어라고 착각하기는 하지만 다 원래는 남의 나라 말이다.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인 관계이지만, 기호와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했을 때, 바로 저런 말들이 담고 있는 실질 또한 남의 나라에서 배웠다는 뜻이 된다. 이 나라는 정말 수많은 것들을 다른 나라에 빚지며 커온 나라고 덩치가 좀 커지면서 마치 그걸 자기 힘으로 다 한 듯한 착각에 빠져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데서,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게 직업윤리인 한 의사가 처한 처지에서, 외상센터며 닥터헬기와 같은 제도가 정착되지 못하고 헛돌기만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달라. 한국은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냐'라면서 베끼기조차 포기한 나라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본다. 그래, 우린 다르다, 달라서 이 모양인 것이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집권한 그 시절의 사람들도 사실은 기득권이 되어 있었다는 걸 사람들은 작년에 똑똑히 보았고, 그마저도 '내부 단속'을 빌미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다들 이단시하는, 권력을 잡은 일개 독재적 파벌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찬성하면 내 편이요, 내 편이니 찬성한다. 국민들에게도 그걸 강요한다. 이걸 똑똑히 보고 나니 정말 일말의 희망도 그들에게 기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골든아워>를 열심히 읽었던 그때의 심정이나 오늘의 심정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게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사람의 목숨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대전제 같은 건 이 나라에 없다. 오히려 더 귀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음을 만천하에 공개해버렸다. 대리시험을 쳐주고 논문 제1저자가 되도록 손써줄 부모형제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사고가 나서 길바닥에서 시간을 끌다 죽어도 그게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랄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 절망감이 독버섯처럼 이 사회에 퍼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심정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지경이 된다면 어떨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당장 그게 눈앞의 현실이라면? 나는 분명 그렇게까지 몰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