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記者 (角川新書) (新書) - 望月 衣塐子/KADOKAWA |
어떤 개념 자체를 책 제목으로 내기란 여간한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처음 이 <신문기자>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 이는 곧 이 책 안에 '신문기자의 올바른 정의(定義)'가 들어 있어야 함을 뜻한다. 신문기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저자는 어떻게 이를 실현해왔는가, 그러한 저자의 뜻과 행동이 과연 '신문기자'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면 사람들로부터 도리어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현재 일본에서 '신문기자'들의 처지나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드러난 상황은 생각보다 많이 좋지 않았다. 2014년 11월 중의원 총선거 직전 자민당 부간사장 명의로 각 텔레비전 방송국에 선거보도 공정중립을 요구하는 요망서가 전달된다. 이러한 요망서 자체가 이례적인 것이었고 내용은 더했다. "거리 인터뷰, 자료 영상 등에 일방적인 의견에 치우치거나 특정 정치적 입장이 강조되지 않도록 공평중립, 공정을 기해달라." 이는 공정, 중립을 핑계로 정계에서 간섭하여 방송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저자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를 주목받게 만든 관방장관(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직책) 정례회견의 풍경은 어떠한가. 기자들이 질문을 던져도 '그 지적은 옳지 않습니다'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문부과학성에 물어보세요' '국회대책회의에 물어보세요' 등 판에 박힌 대답만이 되돌아올 뿐이다. 말이 매일 개최되는 정례회견이지 사실상 '묻지마 회견'으로서 관저의 의견을 받아쓰는 행위에 그치게 된다. 이게 옳은 일인가? 나는 저런 답변에 납득하지 못한다, 기자로서 저들이 감추려고 하는 바를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그러니 계속 질문을 던지겠다. 이것이 신문기자로서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끊임없이 벼려온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 책은 모치즈키 기자가 기자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 성장하고 버텨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 모리토모/가케학원 문제를 비롯해 정권과 관저에 관한 의문이 불식되었다고 할 수 없다. 누구도 묻지 않는다면 내가 물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무언가 있을 거라고 보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신문기자로서 경찰이나 권력자가 감추고 싶어하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을 주제로 삼아왔다. 이를 위해 정열을 갖고 계속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한 당연한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말은 쉽지만 이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모리토모/가케학원 양 학원을 둘러싼 총리에 대한 의혹과 이를 알고서도 묵인하고 은폐하려는 관료들의 태도는 옳은가? 누구도 이를 옳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의향을 알아서 헤아리는 건 말단 공무원뿐만이 아니다. 모치즈키 기자에게도 주변을 통해 압박이 들어오며 같은 기자들도 관방장관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거듭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지적한다. 모치즈키 기자가 직접적으로 이 책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권력에 대고 물어야 할 바를 묻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은폐에 동참하는 자들, 그들은 '신문기자'가 아닌 것이다.
모치즈키 기자가 기자로서 평범하게 해온 일이 이상하게도 각광을 받게 되었을 때의 느낀 당황스러움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당황스러움과도 상통한다. 오죽하면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위기감을 느꼈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는 언론에까지 손을 대려는 정권의 태도와 기껏 만들어놓은 '정부와의 끈'을 놓치고 좋은 정보를 얻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의 자세가 맞물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누구나 다 안다. 이를 타파하는 방법도 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을 실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귀중한 행위인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부디 모치즈키 기자와 또한 그와 뜻을 같이하는 언론인들의 건투를 빈다.
TMI적 덧붙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라진 '7시간'을 두고 정말 말들이 많았다. 그때 일본에서는 총리의 하루 일정을 주요 신문에 싣는다는 사실이 잠깐 한국의 언론에도 나온 적이 있다. 또한 청와대에서는 언제 브리핑을 하는지 쉽게 찾아보기 힘들지만(하루 혹은 일주일 등의 단위로 정기 브리핑이 있는가? 브리핑은 일방적인가? 기자들의 질의와 대변인의 답변이 있는가? 등등의 사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보았지만 정기 브리핑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비서실장 격인 관방장관이 하루 두 차례, 오전 11시와 오후 4시에 정례회견을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이를 묻지마 회견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 모치즈키 기자와 같은 사람들이다). 일본 언론이 권력에 긴다고 비판하는 건 쉽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제도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디테일의 차이가 양국간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자세히 알려줄 전문가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TMI 2) 11월 7일 추가.
오늘 모 영화관련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 <신문기자> 평을 보게 됐다. 그런데 이 책을 '소설'이라고 당당히 두 번이나 언급함... 소설 아닙니다. 자전적 논픽션입니다. 그새 소설판이 나왔나 하고 아마존재팬에서도 확인했지만 역시 없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일본 통신원도 있었고 내부에 일어를 할 줄 아는 분들도 있었던 듯한데 왜 이런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체크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감... 수정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