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직업이다. 설령 환자 본인이 스스로 죽음을 시도하다 왔다고 하더라도 일단 병원 문턱을 밟은 이상 병세가 악화되거나 저세상 사람인 채로 문을 나서는 게 당연하다고 보지 않는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게 의료의 대전제이다.
하지만 이 대전제는 저자인 이국종 선생님과 선생님이 이끄는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에서 참담하게 어그러진다. 큰 사고를 당한 환자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고 여러 장기와 인체의 기관이 복합적으로 부상했을 가능성이 크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이를 처치하는 여러 수술이 쉬울 리 없으며 당연 고도로 훈련받은 의사 및 간호사, 비싼 장비, 막대한 혈액 등등이 필요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최대한 빨리 환자를 이송하는 방법은 항공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잘 훈련된 파일럿과 의료용 헬기가 필요하다, 갑자기 복잡하고 어려운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하므로 고도로 훈련된 의사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쉽게 알 수 없는 수술방에서 의사를 보조할 간호사 역시 그러하다, 환자의 상황이 매우 위중하므로 실낱 같은 숨을 보존하려면 당연히 비싼 장비가 필요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목숨을 신속하게 살리려면 그만큼 많은 것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녹록지 않다. 인력 보충은 거의 영원히 되지 않는다. 어려운 수술과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대가는 적자로 돌아온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이 합당하겠지만 수많은 절차와 회의 사이에서 순조로운 외상센터 건립은 표류한다. 그나마 환자들이 계속 살아서 나가는 것은 이국종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의료진의 생명을 갈아넣는 희생 덕분이다.
아무리 애써가며 사람을 살려놓아도 그 사람을 살린 이는 결코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뭘까? 위급한 상황에 환자를 가능한 한 빨리 살려놓자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 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지만 결코 그런 체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빨리 나가줬으면 하지만 결코 공식적으로는 그런 해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누구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돈이 될 만한 사업이라 생각해 너도나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도 그 사업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론자들은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이유들이 이 사회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도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한 의사와 그의 스태프들의 처절한 희생을 담은 이 책 앞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죄송스럽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나라에는 '사람의 목숨은 어떤 경우에도 살려야 한다. 무엇에도 앞서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라는 대전제란 사실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빨리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시스템을 갖출 생각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목숨은 평등하지 않다. 헬기가 아니라 콩코드를 동원해서라도 살려야 하는 목숨이 있는가 하면 앰뷸런스 안에서 응급실을 전전하다 죽어도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목숨이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일단 병원에 빨리 가서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이 국가에 정말로 존재한다면 분명 위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목숨을 살려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고 내가 그런 상황에서 살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럴 테니까. 그러려면 빨리 환자를 운송할 수 있는 항공체계가 있어야 하고 고도로 훈련된 의료진을 육성하고 지원하며 아무리 비싼 병원비가 들더라도 일단은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미국의 의료 체계는 정말 문제가 많다고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하는 분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 체계가 죽어가는 사람을 버려두지는 않는다. 병원비로 그가 파산하든 말든 그건 둘째 문제고 큰 사고가 터졌을 때는 일단 살려놓고 보는 게 그쪽 의료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도 필요하지 않다. 시스템이 있지도 않지만 시스템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한들 '어떻든,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든 살리는' 쪽으로는 굴러가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확인한 사실은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가 불의의 큰 사고로 여러 장기가 으깨지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종합병원이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 있지 않으니 나는 이런저런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뭘 해보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마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는 (아무도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가치 있는 목숨과 그렇지 않은 목숨이 있으며 나는 의료용 헬기를 태워서라도 살릴 만한 목숨은 아닐 것이다. 큰 사고가 났으니 어쩔 수 없네요, 안타깝습니다만 운명하셨습니다, 가 나와 가장 가까웠던 이들이 듣는 적절한 위로의 말이 아닐까.
이렇게 해서 뼈를 깎는 이국종 선생님과 스태프들의 17년간의 노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위에서 말한 불의의 사고 현장에서 절대로 환자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그런 이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시스템을 만들려다 사고 현장보다 더 참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깎는 희생과 남의 목숨을 버려둬도 아무 상관없는 현실 사이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은 계속 표류한다.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려 계속 자신을 희생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어이없이 죽어갈 것이다. 전자는 정말 예외적인 일이지만 후자에는 아마 예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사회의 그런 민낯이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 책에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죽음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늘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2019.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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