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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본이다. '인도人道에 대한 죄'는 도쿄 재판에서도 '통상적인 전쟁범죄' 및 '평화에 대한 죄'와 함께 심리 대상이 되었지만, 판결에서는 '통상적인 전쟁범죄'와 구별되지 않았고 엄격한 적용도 행해지지 않았다. 만약 상기한 정의를 엄격히 적용했다면 731부대의 인체실험이나 소위 '삼광작전'은 물론 카이로 선언에서 비난을 받은 '조선 인민의 노예화'나 조선인, 중국인 '강제연행', 그리고 당연히 '성노예제'로서의 '위안부' 제도도 심판되어야 했다. 전후 동서독은 스스로 10만 이상의 나치전범 용의자를 수사해 6천 건 이상의 유죄판결을 내려왔지만, 일본에서는 단 한 건도 수사된 일이 없고, 단 한 사람도 심판된 일이 없다. 일본 정부에게 책임자 처벌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유엔인권위원회 게이 맥두걸은 전후 유럽에서는 일관되게 전범의 심판에 중점을 둬왔는데,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는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아야 할 학대행위가 저질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거의 처벌이 안 된 상태'라는 점을 '무엇보다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1994년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고발장을 도쿄지검에 제출하고 접수를 거절당한 한국의 전 '위안부'들을 지지하는 박원순 변호사도 "일본의 전쟁범죄와 인도에 대한 죄가 서양에서의 같은 죄와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정의의 여신에게 두 개의 얼굴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_다카하시 데쓰야, <역사/수정주의>에서 

 

 

* 오늘 뜻하지 않게 세상을 뜬 그분에 대한 뉴스들을 접하다가 오래전에 읽은 이 대목이 홀연히 떠올랐다. 인권변호사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일본을 오가며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헌신했음은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의의 여신의 얼굴이 두 개가 아니라는 표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여기서는 이 잣대, 저기서는 저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게 '정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모두 같은 인간이다, 누군가의 범죄는 범죄가 되는데 왜 어떤 누군가의 똑같은 행동은 범죄로 취급받지 못하는가. 그런 울분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듯했다.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나는 사생활은 전적으로 보호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혼외관계를 가졌건, 애인이 몇 명이건, 어머니(혹은 아버지)가 다른 애들을 두었건 어쨌건 솔직히 별로 신경 안 쓴다. 그건 소위 '집안일'이다.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흔해빠진 조리돌림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다. 또 사생활과 사회적 역량은 별로 상관관계가 없고 따로 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생활에서 일어나는, 분명 '범죄'가 되는 행위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그건 이미 사생활이 아니다.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범죄다.

 

고인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은 앞으로 여러 통로를 통해 밝혀지리라 믿는다. 현실적으로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제기된 혐의 또한 법정에 갈 수 없게 됐다. 다만, 정치인으로서의 10여 년 정도를 빼놓고 사회활동의 대부분을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앞에서 해온 고인의 생에 대한 종합적 평가 또한 바로 저 말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