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야마와 시다바리

category 말들/인용 2020. 7. 11. 01:34

이 기사를 쓴 기자 분이 사실은 모르실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기사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 '야마'와 '시다바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353&aid=0000037311

 

노가다·시다바리·야마…새삼 알게 된 ‘조선어 말살’ 흔적들

━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한국에도 원자폭탄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경남 합천에 그렇게 많다는 건 2018년에야 알았다. 그해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이가 ��

news.naver.com

'야마'는 물론 산(山)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그런데 이게 일본에서는 경찰, 신문기자들의 속어로 '사건'을 뜻한다. 일드에서 가끔 들었던 말로 기억하는데 '데카이 야마'라고 하면 '큰 사건' '큰 건수'를 말한다. 한국 언론계에서는 이 '야마'가 '핵심 주제'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사건'을 뜻하는 '야마'에서 변용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말 '시다바리'. 나도 상당히 오랫동안 일본말 같기는 한데 과연 뭘까 많이 궁금했었다. '시다'라는 말은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봉제 공장 등에서 일하는 말단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흔하게 쓰이던 말이다. '아래'를 뜻하는 '시타(下)'에서 온 듯하다. 기자님이 지적하는 대로 '시다바리'라는 말은 일본어에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말단' 등을 뜻하는 말로 또 '시탑파(下っ端)'라는 단어가 있다.

 

시탓파, 라고 쓰는 게 표기법에는 맞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말 많은 표기법 이야기를 조금 끌고 들어오자면 '카, 타, 파' 등 일본의 청음이 '어두'에 올 때는 '가, 다, 바' 등으로 표기하게 되어 있다. 사실상 어두에 오는 청음/탁음 구분이 조선어/한국어와는 잘 맞지 않거나 큰 의미가 없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네들은 Ka와 Ga의 구분이 명확하지만 조선 사람들의 귀에는 이게 구분되어 들리지 않았거나, 별로 구분해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절대 비하가 아니다!).

 

그래서 '東京'을 '토오꾜오'라고 쓰지 않고 '도쿄'라고 쓰자고 정한 것이고, 대부분의 한국어 사용자는 이에 대해 별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 비슷한 예로 한국에서는 'ㄱ'으로 표기하고 발음해도 서양인 귀에는 이게 'k'로 들릴 때가 많은 모양이다. 축구선수 '이강인'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 'Kang In'이라고 적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좀 연식이 있는 책을 뒤져보면 '세가야(세가야다!)'처럼 청음과 탁음 구분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흔적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시타'를 흔히 '시다'라고 했던 것처럼, '시탑파'를 '시답빠'로 듣고 쓰기 시작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리'가 붙은 이유는 아직까지 그럴 듯한 걸 찾아내지 못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시다바리'의 원형으로 '시탑파'가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타,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2015년 즈음까지는 언론계, 특히 신문 쪽에서 '사쓰마와리(경찰서 돌기)''하리코미(잠복, 한곳에 붙박여 있으면서 하는 집중취재)'니 하는 일본어를 많이들 썼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일 거라 생각한다.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0&t_num=13606877

 

[도제교육 케이스 2] 언론계 3시간 자고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욕설·질책까지

[도제교육 케이스 2] 언론계 3시간 자고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욕설·질책까지

economychosun.com

이 기사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우라까이';;;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고 들었다. 이 말만 봐서는 역시나 '시다바리'처럼 해당하는 일본어가 뭔지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암튼 상당히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허구한 날 순화가 어쩌고 다듬기가 어쩌고 국어가 어쩌고 하는 기사를 내는, '말'을 다루는 사람들도 결국은 '업계 관행'에서 오랫동안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다. 

 

영화 <말모이>는 보지 않았으나 시대배경상 저항성이 강할 거라 생각한다. 어떤 일본인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주제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어학' '문장' 등을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곧잘 영화나 드라마화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사전 만드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행복한 사전> 같은 영화도 있고, 문장 고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수수하지만 굉장해!> 같은 드라마도 있다. 사람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이지만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게 '언어' '언어학'에 대한 그들의 정열이다. 약간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그들만큼 '언어'(통상적인 외국어 공부 말고)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드물다. 그 정열이 곧 '세상 모든 다양한 언어에 대한 애정'을 뜻하지는 않겠지만 <말모이>의 일본 개봉 또한 '언어에 쏟는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