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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

category 말들 2020. 10. 1. 20:02

현재 모 포털 '가장 많이 본 뉴스' 상위권에 위치한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3&aid=0003565776

 

“국민이 힘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 나훈아에 야권도 열광

지난 30일 15년 만에 TV에 출연해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친 ‘가황(歌皇)’ 나훈아의 공연과 발언에 정치권까지 들썩이고 있다. 나훈아의 “KBS가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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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힘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ㅡ아마 이 말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잘못된 정치, 거짓된 정치를 하는 사람이 생길 수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정자'에는 '잘못된 정치, 거짓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없다. 위정자는 그냥 '정치를 하는 사람', 즉 '정치가'라는 뜻이다. 국민이 힘이 있거나 없거나 언제나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있었으니 안타깝게도 이 문장은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물론 이 말이 나온 맥락이나 이 말이 화제가 되는 까닭은 대강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답답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말이 안 되는 문장을 가지고 대강 묻어가려는 정치인들은 솔직히 용서가 안 된다. 그들이 바로 '위정자' 아닌가. 위정자의 말뜻도 제대로 모르면서(혹은 모르는 척하면서?) 한 가인의 발언에 염치없이 올라타려 하다니, 이런 말이 안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이다(상호비방과 궤변이 아니라). 누구보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정치인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적어도 나는 용어 사용이 신중하지 못한 정치인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기사에 나온 몇몇 정치인은 그런 점에서 일단 무조건 탈락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말이 안 되는 문장인 줄 그들이 모를까? 아마 다 알 것이다. 알면서도 '이런 뜻이겠거니' 하면서 좋게좋게 넘어간다. 그건 사석에서나 할 일이지 결코 말을 다루는 언론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말이 안 되는 걸 가지고 '이런 뜻이다'라고 우기는 태도나 다를 게 뭔가. 내가 보기에는 똑같다. 바로 이런, 알게모르게 그냥 그런 뜻이겠거니 하면서 넘어가주는 태도가 몇몇 정치인의 지록위마를 방조하고 부추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말이 혼탁해졌다'라고 평한 평론가가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내로남불을 정당화하려다 보니 말이 혼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잘못을 잘못이라 솔직히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서도 여전히 '너희들도 그랬지 않느냐'를 도돌이표처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보복의 예고편을 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정말로 그 옛날 짱돌과 화염병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내던지던 사람들이 이럴 줄은 몰랐다. 그들의 신념과 이를 표현하는 말이 이렇게 공허할 줄은 몰랐고, 그 공허가 지금 이런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게 정말로 믿기지 않는다. 입은 사회주의, 머리와 몸은 자본주의... 그리고 그들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그 어느 쪽에도 철저하지 못한 혼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