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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category 닥터헬리와 응급의료 6년 전

골든아워 1~2 패키지
국내도서
저자 : 이국종
출판 : 흐름출판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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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이국종 선생님의 <골든아워>에서 출발한다. 
사실 나도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외상외과'에는 관심이 없었다...ㅜㅜ 선생님의 존함은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중요한 환자를 살려냈다는 뉴스를 보고 알고만 있는 정도였다(반복되는 커다란 이슈에 대한 요즘의 뉴스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없다... 살아오면서 어느 시점부터 그냥 텔레비전도 잘 안 보고 뉴스는 더더욱 안 보는 편이다. 그럴 수 없는 뉴스도 물론 있었지만...). 인터뷰도, 신문기사도, 다큐도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그랬으니 그냥 아, 훌륭한, 손꼽히는 외과 선생님인가보다, 워낙 뛰어나셔서 중요한 환자들을 맡으시는 분인가보다 하는 막연한 생각밖에 없었다. 교통사고나 추락사고가 나면 당연히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 좀처럼 실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동향까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이유에서 베스트셀러를 주시하는 업계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미리보기를 살펴보는 순간 뭔가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탈락'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혔다. 아, 유명한 의사선생님인데 왜? 나는 그 단어에서 갑자기 이 책이 지난한 패배의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의외였다. 왜? 어째서? 여기엔 도대체 뭐가 있는 거지?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직접적으로 닥친 감정은 공포였다. 내가 불의의 사고로 중증외상 환자가 되었을 경우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고 죽을 확률은 30퍼센트나 된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그냥 죽어간다는 이야기이다. 내일 당장 그 꼴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회생시키기 위해 분명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은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선생님이 그걸 확인시키시려고 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고난의 16년간은 분명 그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번째로는 '사람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참담함과 부채감이었다. 수술이라는 일만 해도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격무일 텐데 당신이 알고 계신 대로, 보고 배우신 대로 실천하려 하다가 수도 없이 찢기고 깨져나가는 과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읽기가 괴로웠다. 선생님은 일이니까, 그게 교과서적인 거니까, 라고 담담하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남의 과도한 희생 위에 서 있는 오늘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쓰라리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다. 모든 사회 제도는 개인이 원하는 바를 가장 적합하게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회도, 국가도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절대 개인의 삶이 이렇게 갈려나가서는 안 된다. 책을 읽은 다음, 나는 이 거대한 부채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저,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것들을 정확히 읽자고. 선생님의 책을 다시 읽고, 모을 수 있는 자료를 모으고, 좋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자고. 나쁜 버릇이지만 나는 일본어를 조금 읽을 수 있어서 뭐든 그쪽 자료를 먼저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한국의 정부 기관 같은 데 들어가 있는 전문적인 자료는 내가 입수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그런 한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에 가까운 자료는 아마 전무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는 일반인이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 당장 클릭 몇 번이면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일단 그거라도 먼저 좀 보자 싶었다. 그렇게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도 되고 생각할 거리도 생긴다. 그렇게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단, 한국에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쉽게 주장할 생각은 없다. 여기 있는 자료는 정말 너무 쉽게 손에 들어오는 자료다. 이런 자료가 현재 없어서 응급의료 꼴이 그런 게 아니고 윤한덕 선생님이 그리 허망하게 가신 것도 아닐 터이다. 어떤 구호를 세게 외쳐본 적도 거의 없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다. <골든아워>에서 내가 처절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교과서적인 원칙과 '정말로 그렇게 되기까지' 사이가 얼마나 먼가였다. 뭔가를 먼저 배우고 깨달은 사람이 그걸 이 땅에서 그대로 실현하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모습 앞에서 입에 발린 말들은 안 하느니만 못한 잔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얄팍한 지식과 자신의 편향을 가지고서 함부로 '일해라 절해라' 했다가는 그분들의 노고를 말 한마디로 폄훼하게 된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저 할 수 있는 게 읽고, 정리하는 것뿐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지만 정말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어떤 응원이 되기는 할까? 알 수 없지만 그러리라고 믿고 싶다. 

그 외에는 좋아하는 것들을 올릴 생각이다... <골든아워>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한덕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책을 읽은 후에나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느낀 감정들은 글로 표현하기보다는 음악에 의탁하는 것이 나았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삶의 여러 순간에 음악을 찾았듯이. 그런 음악들에서 출발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올려볼 생각이다... 

(사실 자료를 읽는 건 힘들지 않다... 블로그 주소나 이름을 정하고 닉네임을 고민하는 것에 비하면...-_-;; 블로그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기에 오히려 이게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