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비장탄'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려 한다. 블로그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만날 수 있는 단어라 내게도 익숙한 말이었다. 하지만 '빙쵸탄'을 '비장탄'으로 옮기지 않은 시도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일단 한국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이고, 이 '비장탄'이라는 게 '비장', 그러니까 일어로 읽자면 '빈초(야)'라는 사람이(표기법 이야기는 아래에 하자)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고 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니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니 하면서 이름을 한국 한자 발음대로 쓰는 표기도 제법 보였지만 요새 이름을 이렇게 읽다가는 촌스러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책에서는.
그러니 binchotan으로 나왔을 원서의 단어를 어딘가에서(?) 찾아서 '빙쵸탄'이라고 고유명사처럼 취급해 번역한 고심도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 (재미있는 건 '빙쵸탄'이라고 네이버에서 쳐보면 숯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binchotan은 '백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숯이다. 백탄이라는 말이 귀에 익지 않아 선택하지 않은 거라면 '빙쵸탄'은 귀에 익은 말이었을까? 책을 꼼꼼히 살피지 않아서인지 이 '빙쵸탄'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눈에 걸린 다른 단어 중 하나인 '우수구치' 설명은 금방 찾았지만) '높은 화력을 내는 거무스레한 숯'이라고 설명해줬으면 생소함이 덜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게다가 '빙쵸탄'이라는 표기는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하는 일본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다. '빈초탄'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는 영어로 된 책에 나오는 일본어를 다시 옮기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영어로 책을 쓴 저자가 사용하는 일본어 단어를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인데 기왕이면 표기법에 맞게 표기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일본어 말고도 프랑스어 등의 외국어 단어도 있으니 일일이 신경쓰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은 짐작이 간다(한 책 안에 여러 나라 고유명사가 나오기 시작하면 체크하기가 엄청 힘들어진다).
자, binchotan이 '빙쵸탄', 혹은 '백탄'이 되기까지 이런 복잡한 과정이 있다. 영어 철자로 표기한 일본어를 웹에서 뒤져 실체를 확인한 다음, '비장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숯임을 알아낸다. 이걸 한국어로 가급적 정확히 표기한 단어가 없을지 국어사전을 뒤진다. 다시 binchotan은 어떤 나무로 만들고, 한국어의 '참숯'과 '백탄'은 어떤 나무로 만드는지 매치시켜본다. 중간에 일어 사전과 일본어 웹도 들어갔다 왔으니 한 단어를 위해 최소 서너 번의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표기법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것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는 표기법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내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아 번역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어떤 말을 쓰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고 의사소통에 큰 지장이 없다면 무슨 상관인가(물론 말과 글이 업인 사람은 좀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나는 단지 누가 어떤 단어를 왜 그렇게 썼는지, 대안은 없는지, 나름으로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이 제각각 깊이 좋아하는 것이 있듯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 언어이고 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