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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양의 꿈?

category 말들 6년 전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국내도서
저자 : 필립 K.딕 / 박중서역
출판 : 폴라북스 201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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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국내도서
저자 : 필립 K. 딕(Philip K.Dick) / 이선주역
출판 : 황금가지 200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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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특별판) - 10점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필립 K. 딕의 유명한 장편소설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이 특별판으로 새로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용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으니 여기에서 이야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TMI적(...)으로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우리가 보통 '무슨무슨 꿈을 꾸었다'라고 할 때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운수를 상징하는 꿈으로서 거의 일반명사화된 

 

개꿈

용꿈

돼지꿈

 

이 있고... 

 

그 외에 다른 꿈들도

 

아파트 꿈

소나무 꿈

고양이 꿈 

바다 꿈

기싱 꿈(...)

 

등 '개의 꿈' '고양이의 꿈' '아파트의 꿈'처럼 '의'를 붙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개의 꿈' '고양이의 꿈'이라고 했을 경우에는 '개가 꾸는 꿈' '고양이가 꾸는 꿈'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소설의 제목만큼은 예전부터 신경이 쓰였다. 이번 특별판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제목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택했다. 하야카와쇼보에서 나온 일본어판의 제목은 1969년 이래 アンドロイドは電気羊の夢を見るか?인데, 여기서 電気羊の夢을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전기양의 꿈'이 되겠으나 사실 이는 '전기양에 관한 꿈'으로서 일본어 문법 체계에서는 電気羊夢이라고 하면 오히려 어색해지기에 오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어 체계에서는 '전기양의 꿈'이라고 하면 어색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전에 나온 책들의 제목도 살펴보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도 어딘지 이상하다. '꿈꾼다'라는 말에는 '이상적인 무언가를 바란다'는 뜻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안드로이드일지도 모르는 인물이 바라는 것은 전기양이 아닌 '살아 있는 진짜 양'이다. 안드로이드?가 꿈꾸는 것,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전기양이 아니라 '진짜 양'이므로 '전기양을 꿈꾼다'라는 말은 책의 내용과 조화롭지 못한 듯하다. 

 

그런데... '전기양'이라는 말은 어떨까? 'Electric Sheep'의 직역인 이 말은 너무 유명해져서 쉽게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전기 고양이' '전기 개'라고 했을 때는 일반적으로 듣기에 상당히 어색하다. 보통 '전자전기 기술을 이용한 인공 생명체'를 지칭할 때 한국어에서는 '전기 무엇무엇'이라고 하지 않고 '전자'를 많이 붙여왔다. '전자 고양이' '전자 개'는 그나마 덜 어색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 '전기양'은 고정되어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친 상태에서 나름대로 이 책의 제목을 조금 바꾸어보자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 꿈을 꾸는가'가 어떨까 싶다. 

 

참고로 <필립 K. 딕의 일렉트릭 드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 드라마 시리즈의 한국어 번역에서는 '짜릿한 상상'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당연히 '전기 꿈'(...)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렉트릭 드림'이라고 음역하는 선택도 있었을 텐데 '전기'의 짜릿함과 꿈=상상을 결합시켜 '짜릿한 상상'이라는 제목을 단 번역자분의 센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에 비하면 전기와 전자도 딱히 구별할 필요도 없다고 보았던 것 같고, '전기양의 꿈'처럼 안드로이드가 꿈꾸는 건지 전기양이 꿈꾸는 건지 구별도 안 가게 만들고, 책 내용과 달리 전기양을 이상의 대상으로 보게 만든 '전기양을 꿈꾸는가' 같은 이전의 책 제목은 뭐랄까, 좀 성의 부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최신판?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이미 어떤 '표준'처럼 되어버렸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